익명의 학우
방전 2018년 5월 말. 아마 그때의 나는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강 없는 9개의 수업, 왕복 4시간의 통학, 주3회 알바, 동아리 활동-그 외 심리적 요인-까지 이 모든 것을 지속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 상태였다. 점점 같잖은 이유로 학교를 안 가고** 오랫동안 봐왔던 친구에게 급작스럽게 절연 통보를 하는 등 내 정신이고 일상이고 이상하게 굴러간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게 됐다.
빛을 찾아서 2018. 05 그러니까, 병원을 찾게 됐다. 학교상담소보다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먼저 찾아갔다. 학교 상담소를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왠지 병원을 먼저 갔다. 그래도 돈 내고 받는 게 좀 낫다고 생각했나?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10만 원 가량을 내고 받은 심리검사의 의사 해석은 ‘부정적 생각 많음. 상담 필요.’가 끝이었다. 이후 한 달 4회 상담 비용 24만 원에 대한 안내를 듣고 2분 걸린 진료의 진료비용 만 원을 지불하고 나오니 내 손에는 검사결과지와 함께 비참함이 들려 있었다.
2018. 09 어찌저찌 방학을 맞고 2학기가 시작되면 학생생활상담소부터 찾아가리라 마음먹은 채 방학을 보냈다. 개강 후 상담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에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니 친절한 인사와 함께 함께 종이 한 장을 받았다. 거기에 인적사항도 적고 장기 상담을 원하는지 단기 상담을 원하는지도 표시하고, 지원하는 심리검사의 종류 설명도 들었다. 우선 심리검사 내용 해석을 위한 1회 상담을 받아본 후 장기 상담을 결정해도 된다는 안내도 받았다. 들어갈 때는 빈손이었는데 나올 때는 두툼한 검사지 묶음을 들고 나왔다. 한 시간 반 동안 열심히 답을 적어 갖다 드리고 첫 상담 일정이 잡혔다.
2018. 09 ~ 2019. 09 첫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우선 선생님과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마주 앉았다. 시작에 앞서 상담 내용을 녹음해도 되는지 여쭤보시고 이유를 설명해주신다. 녹음 버튼이 눌리면 본격적으로 상담이 시작됐다. 음, 아마 자해를 그만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나. 선생님께 상처를 보여드렸을 때의 표정은 떠오르니 아무튼 그런 이야기였을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여러 가지가 섞인 느낌이었다. 표정으로 위로해주시는 느낌……?) 당시 나는 종종 자해를 했고 자살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서약서를 썼다. 서약서 내용은 첫째, 자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둘째, 힘들면 선생님 혹은 친한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 두 명의 연락처를 비상연락망으로 적었다. 첫 상담의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한 번은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했다.
나 : "저는 이미 친한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더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금도 충분해요."
선생님 : "어쩜 상담 받는 친구들이 다 비슷하게 얘기하죠?"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몇 명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당시의 나는 통학과 알바 등의 이유로 학과 행사를 매번 빠지게 되어, 이미 서로서로 친해진 학과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꼈다.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는 나로서는 그런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오히려 방어적으로 ‘나 친구 필요 없어! 지금도 충분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 별거 없는 18년도의 대화가 글을 쓰는 21년도까지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건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고민과 상황이 보편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나는 이때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하고 울적한 생각을 환기할 수 있었다. 그건 어떤 종류의 공감이기도 했다.
상담을 하고 상담실을 나오면서 후련한 적은 거의 없었다. 상담 시간이 끝나면 그때 내가 한 말들, 내가 한 행동들, 선생님이 하신 말씀 등등을 다시 생각하기 바빴고,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거기서 연장된 우울함이 길게 가기도 했다.*** 상담을 받으면 무언가가 막 해결될 것 같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고민에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괴로워하는 상황이나 감정을 직면하고 또 정리하고 객관화 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에 가까웠다. 상담이 종결되고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다만 그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에 그때보다는 잘 버티고 있다. 내가 상담에서 얻은 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 조금 더 살아볼까?’ 같이 감정과 삶을 가벼 이 여겨보려는 태도였다.
2019. 10 상담 종결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개인의 상태에 따라 끝없이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장기 상담도 10회 정도면 마무리 되겠지 생각했는데 거의 매주 1년을 넘게 상담을 받았다. 19년도 하반기에는 슬슬 상담을 끝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의 상황이 괜찮기도 했고 상담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보다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선생님께서 종결을 준비해도 괜찮을지 여쭤보셨고 그 후 2주에 한 번으로 상담 횟수를 줄였다. 그렇게 몇 번의 상담을 더 하고 함께 예정한 종결일이 다가왔다. 종결한 날의 기억은 별로 없다.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와 잘 지내자는 말을 나누고 요상한 기분으로 상담소를 나왔던 것 같다. 마치 내 우울들을 타임캡슐 묻듯 상담소에 묻고 아주 나~중에 와야지(실은 절대 안 와야지) 하는 그런 기분……?
닳은 건전지들의 사회 학교 상담 시설의 가장 큰 장점은 전액 무료라는 점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그거 다 네 등록금에 포함된 비용이다......?’ 진로, 연애, 인간관계 등 모든 고민을 다루는 곳이 상담소이니 한 번쯤 가보는 걸 적극 추천한다. 큰 고민이 없더라도 ‘비싸다는 검사 한 번 받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보는 것도 적극 추천한다.
언제든, 어떤 이유든 한 번 가보는 것 자체로 긍정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한 번 가봤으면 다음에는 더 쉽다. 가지각색으로 넘쳐나는 신체 건강 관리법이 가까이에 있듯, 우리는 정신 건강에 필요한 정신과를 가까이 해야 한다. 그러니 힘들지 않을 때도 가면 좋겠다. 무엇이든 예방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까. 이렇게 쓰면서도 나는 ‘아, 이렇게 있다가는 정말 죽겠구나.’ 싶을 때야 상담소를 찾았다. 내 고민이 너무 별거 아닌 것 같고 내 우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가 아니니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상담소든 병원이든 전문가를 찾아가보자. 그곳에는 불을 밝힌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살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이 자신을 찾아온 자살 유가족에게 남긴 말을 차용했다. 그는 자신의 연락처와 함께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제가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같잖은 이유 중 하나는 15분을 걸어 역에 도착한 후에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냥 그대로 다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