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송지원
최근 논란이 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다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저 역사를 왜곡해 보여준 것뿐만 아니라 중국 복식을 우리나라 무관들에게 그대로 가져와 입히고 중국 음식인 월병과 피단을 조선의 음식처럼 방영해 시청자들의 큰 질타를 받았었죠. 실제로 방영이 중지된 이후로도 SBS의 지상파 재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할 정도로 국민들이 분노했을 정도로 왜곡이 심했는데요. 중국의 문화 훔치기는 꽤 오랜 기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동북공정, 즉 ‘동북부 지역’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겠죠!)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국가사업부터 김치,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인을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매체공작, 즉 전파공정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 중국의 역사, 문화 훔치기. 이에 관해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1) 문화는 나라를 대표한다. 2002년부터 진행된 초기의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해사를 자신의 역사에 편입해 북한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많은 한국 의 역사학자가 통일 이후 만주의 땅을 지켜내기 위해 미리부터 견제하는 것이라 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기에는 KBS교향악단이 평양에 가서 공연할 정도로 북한과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원만했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 고 나면 통일된 ‘대한민국’에서 누구의 땅인지 논란이 있었던 만주 지역의 땅을 돌려달라고 청하기 전에 먼저 중국이 지켜내겠다는 뜻이죠.
그러나 현재의 전파공정은 만주 지역의 영토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한 면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중국이 전파공정을 하는 이유가 중국의 무산계급문화대혁명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아, 이렇게 물어보면 잘 모르실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줄인 문화대혁명은 어떤가요? 이건 좀 익숙하죠?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의 주도하에 중국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문화 창조 운동입니다. 문화대혁명의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배경이 무엇이 되었든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자국민이 손으로 상실된 것이죠. 특히 사료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 1990년에 일어난 아시안게임 개막행사의 공자탄신제의 원형을 찾을 수 없어 한국인 전문가를 모셔가기도 했습니다. 즉, 중국의 ‘역사적’, ‘문화적’ 사료가 부족하게 된 셈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중국을 이루고 있는 민족은 총 56개, 한족이 98%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약 2천 6백만이나 되는 소수민족을 이탈하게 둘 수도 없죠. 그렇다면 소수민족을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문화적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죠. 한국의 문화는 그들 중 ‘조선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족은 주로 연변에서 사는 조선인들의 후예들로 약 180만에서 190만쯤의 인구수를 가진 중국의 소수민족입니다.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하지만 문화는 한국에 가깝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편입함으로써 조선족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하는 효과를 보려 하는 것이죠.
(2)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임을 하지만 중국이 어떤 의도로 역사 왜곡, 문화 훔치기를 하던 중요한 점은 우리의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우리의 것이 왜 우리의 것인지, 그렇다면 차이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치와 파오차이 국어사전에 따르면 김치란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 파, 마늘 따위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음식. 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 많은 종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반면 파오차이는 그저 ‘절인 음식’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김치가 절인 음식에 들어가므로 파오차이에 김치가 들어가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죠. 김치와 파오차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세계 김치 연구소의 말에 따르면 채소절임인 파오차이는 채소를 소금이나 식초 등에 절이는 데에 비해 김치는 1차로 배추, 무 등을 절인 후 이후에 고춧가루, 파, 마늘 등 여러 부재료로 양념해 2차로 다시 발효시킨 식품이라는 차이를 지닌다고 밝혔습니다.

pixabay 이미지 캡처
더불어 여러 실록에 김치와 관련한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중국의 사신이 김치의 일종인 섞박지를 세 항아리나 달라고 해 가져간 기록이 있으며 세종실록과 문종실록에 김치를 만드는 법 또한 들어가 있으니 김치가 우리나라의 문화라는 것, 더욱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겠죠.
한복과 한푸 최근, 한 게임에서 한복을 중국의 복식이라고 주장하다 한국의 서비스까지 종료했던 사건 알고 계신가요? 그 때문에 요즈음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한복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일수록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이 이루어지는 탓에 복식 역시도 유사한 점이 일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푸는 무엇이고 왜 한복마저도 그 한푸에 편입해 가져가려 하는 것일까요?
한복과 한푸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 둘의 한자를 알아야 합니다. 한복은 韓服, 즉 한국의 복장이라는 뜻이고 한푸는 漢服, 한족의 의상이라는 뜻입니다. 오래전부터 통용되던 단어는 아니고 최근에 등장한 단어로 중국 베이징의 익명 복식 전문가 역시 “한푸는 신조어이다. 한족의 전통 복장을 뭉뚱그려 한푸라고 부를 분, 한족 왕조마다 다양한 복식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직 한푸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단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한복과 한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여성의 한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성의 한복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치마라고 할 수 있겠죠. 한복의 치마가 한푸의 치마보다 풍성합니다. 안에 속바지, 속치마 등을 입어 볼륨을 주는 것이죠. 반면 한푸의 치마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듯 떨어지며 통이 좁습니다. 또, 남녀공용으로 보았을 때 한복은 겉옷이든 그 안에 바쳐입는 옷이든 Y자로 여며지지만 한푸는 11자로 겉옷을 걸칩니다. 더불어 한푸의 경우 상의를 하의 안에 넣어 입고 그 위에 겉옷을 걸친다면 한복의 경우에는 넣어 입지않고 하의 위에 상의를 걸치는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한 시점에서 한푸와 한복이 비슷해지는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명나라 초기, 원나라 말기인데요. 이 시점에는 한반도에서 ‘몽골풍’이 유행했듯 중국 본토에서는 ‘고려양’으로 고려 시대의 풍습이 유행을 타 그것이 명나라까지 내려오면서 고려 스타일의 복식이 ‘한푸’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절의 한푸를 한복이 베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복의 영향을 받아 한푸가 한복의 형태로 바뀐 것이죠.

구글의 한푸 검색결과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의 역사입니다. 국가가 위치했던 지리적 사실을 보자면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 합당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사 시간에야 내내 고구려와 발해가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배우지만 위치로 보면 우리나라보단 중국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동북공정의 주장 역시 이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전성기 시절,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수도를 이전했습니다. 현재 한반도의 평양에 위치한 평양성으로 이전하여 삼한을 통일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었습니다. 더하여 삼한이 모두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 것에 반해 중국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으니 삼한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또, 고구려의 정신을 물려받아 나라의 이름을 ‘고려’로 지었다는 우리의 선조와는 다르게 중국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고구려와 발해를 ‘동이족’, 동쪽의 오랑캐 집단으로 낮잡아서 불렀습니다. 만리장성 밖의 지역은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죠. 심지어 과거의 어떤 사료에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에 반해 한국의 역사서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서 발해와 고구려를 모두 한국의 역사로 당당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발해는 실질적으로 고구려 국민을 지배층으로 둠으로 고구려를 이었고 그 이후의 고려 역시도 고구려를 이었으니 이어져 온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만약 발해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면 볼 수 없었을 외국인을 위한 당의 과거시험인 빈공과도 발해민은 보았으며 유물 역시 고구려를 따라갔기에 같은 계열로 봄이 합당할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적이고 독자적인 난방 방식인 온돌을 발해와 고구려가 사용하였음도 한국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드라마 철인왕후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찌라시’로 낮잡아 대사를 하고, 드라마 빈센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중국산 비빔밥 PPL로 교묘하게 중국을 드러냅니다. 전파공정의 무서운 점은 은근슬쩍 자국의 문화인 것처럼 역사를 가져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시청자가 경계하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전해지는 왜곡을 무의식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음으로 더욱 경계 없이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겠죠. 이는 결국 우리의 문화를 교묘히 앗아가기 위한 밑밥입니다. 이를 방치하다가는 언젠가 우리의 문화가 남의 것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만큼 분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우리 것임을 당당히 밝히고 틀린 일에는 옳지 않다고 단합하여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것을 지켜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