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박하은
아침부터 핸드폰에선 코로나 발생 현황 문자가 옵니다.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 확인을 마친 후 집을 나서면 코로나 방지를 위한 항균 필터가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또 비대면 수업으로 온라인 강의를 듣는 일 또한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생활 속 한 부분입니다.
이 평범한 과정이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에겐 당연한 일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범하다고 느꼈던 이 생활방식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삶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코로나 시대로 인해 달라진 사소한 생활방식들이 장애인들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의 다양한 고충 방역 수칙으로 장애인들의 생활이 불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코로나 확진현황에 대한 정보가 담긴 문자가 와도 코로나 확진자 동선 같은 정보는 그림파일로 되어있어 그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엘리베이터 버튼에 점자가 표시되어있지만, 두꺼운 항균 필름이 부착된 탓에 이들은 점자를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평소 자주 다녀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할지 알 길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 많습니다. QR코드도 시각장애인에겐 큰 벽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식당, 복지관 등 어느 장소에서나 방문자의 출입 기록을 남기기 위해 QR코드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 QR코드를 네모난 칸 안에 정확히 맞춰 넣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기 방명록 작성 역시 작은 칸 안에 맞춰 글씨를 쓰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은 점점 더 외출을 꺼리게 됩니다.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방법으로는 수어, 구화, 말(음성언어), 필담, 몸짓 등입니다. 2017년 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그중 청각장애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사소통방법으로 ‘말(음성언어)’이 88%를 차지한 것을 볼 수 있고, ‘수어’가 3.8%, ‘구화’가 3.4%의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큰 비중을 차지한 말, 수어, 구화는 입모양을 봐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가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린 지금은 입 모양을 읽을 수 없어 대화를 나누는 것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니 그들에겐 소통에 장벽이 생겨버린 셈입니다. 또한 평소 시각 정보에 의존하는 청각장애인 학생들은 교수들의 판서와 입 모양을 확인하지 못해 수강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원격수업이나 온라인 학습이 활성화되고 있는 대학의 경우 비용을 이유로 수어통역이나 자막 등이 거의 제공되지 않는 등 온라인 강의에 대한 지원이 미흡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발달 장애를 가진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복지관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폐성 장애를 두고 있는 한 가족은 복지관이 문을 닫으며 장애의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둔 가족 역시 특수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삶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대부분의 장애인 가족들은 경제와 돌봄의 문제가 연계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러 나가면 아이를 돌볼 수 없고, 아이를 돌보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실제 울산광역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전국 발달장애인 보호자 7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 전체의 22.8%에 그쳤던 ‘낮에 주로 집에서 지내는 발달장애인’의 비율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53.1%로,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학교와 재활센터 등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탓입니다. 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애인들의 소식도 들려오곤 했습니다.
중증 장애인이 자가 격리 대상자가 된다면? 활동지원자 없이는 생활에 큰 불편함이 있지만 자가 격리가 시작되며 일상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혼자서 체온도 재지 못하고, 이동하기 위해선 기어야만 합니다. 혼자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분에겐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질병관리청 등의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9일 기준 전체 코로나19 확진자 중 장애인은 전체 4%에 그쳤지만, 사망자 비율은 21%나 됩니다. 특히, 사망자 수를 확진자 수로 나눈 치명률은 장애인의 경우 7.5%로, 비장애인(1.2%)의 6배였습니다. 이처럼 방역 수칙은 장애인들에게 일상의 불편을 넘어서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우리 사회의 노력 시각장애인이 항균 필터 때문에 점자를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 인천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허지완씨는 이를 개선할 입법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사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점자사용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 보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한다’라는 조항이 신설된 ‘점자법 개정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를 실천으로 옮긴 사례도 있습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같은 목적으로 모인 4명의 학생은 점자 항균 필터 상용화 프로젝트를 실시했습니다. 해밀 도서관은 점자 항균 필름을 제작해 부착 활동과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이미 항균 필름을 부착, 배포한 적이 있는 부천의 해밀 도서관에 자문을 구한 후 굿즈를 판매해 수익금을 마련했습니다. 그 후 서울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강서구청, 성동구립도서관, 성동구립금호도서관 등 총 15개의 건물에 항균 필터를 부착하였고 이는 항균 필터 상용화라는 목표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결과입니다.
“청각장애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부터 조금 더 안전하면서도 소통의 벽에 가로 막히지 않도록 정부에서 투명마스크를 보완해 제작할 수 있도록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이 2020년 7월 6일 올라왔습니다. 청각 장애인에게 소통 더 나아가 생존이 달린 투명 마스크는 일부 민간단체, 기관에서 자체 제작해 무상배포하고 있지만, 자원봉사자와 후원에 의존해 수작업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느리고 일반 보건용 마스크에 비해 가격이 비싸 필요 수량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정부가 나서서 청각장애인의 소통과 안전 더 나아가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 안전한 투명마스크를 개발하고, 투명마스크 생산을 공장화, 기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청원 덕분인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청각 장애인을 위한 투명 마스크와 더불어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마스크 신제품 개발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먼저 시각장애인이 마스크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및 마스크 생산업체와 함께 점자나 음성 변환용 QR코드가 표시된 포장지를 개발했습니다. 이와 함께, 입 모양을 보며 의사소통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입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의약외품 수어용 투명마스크, 일명 립뷰 마스크 개발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코로나 시대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손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왔고, 11일간의 완벽한 고립이 끝났다. 온 몸이 마비됐고, 왼팔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나는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2주를 보냈다. 처음 보낸 2주, 내가 중증장애인임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시험 같았다. 나는 버려지듯 혼자가 돼야만 했다. 왼팔에만 의지한 채 온 집안을 기어 다녔다.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배가 고파서 보급품으로 받은 박스를 열어 보았다. 들어 있는 건 생쌀과 배추, 그 외 라면과 부식들... 몸에 물만 적시는 샤워, 쌓여만 가는 쓰레기, 악취... 11일간의 자가 격리는 지옥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홀로 자가 격리 된 중증 장애인 김모씨의 인터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피해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관심과 모든 사람들의 작은 도움만으로도 사회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차별이 심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 생각하지 못했던 코로나 시대의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국민일보(2020). “중증장애인 왼팔로만 버틴 11일의 자가격리”. 2020.4.6. 이슈 & 탐사 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6608 ・[뉴스+]“방역 필름에 QR코드도 장벽” … 코로나 1년, 장애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33286629018088&mediaCodeNo=257 ・배려 없는 방역조치, 장벽 더 키워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213 ・[출처: 중앙일보] “엘베 좀 눌러주세요” … 이말 들은 與인턴이 끌어낸 착한 법안 https://news.joins.com/article/24048191 ・일상 속 거리두기? 점자항균필름 작업을 진행한 이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4170 ・청각장애인 위한 ‘투명 마스크’ 생산, 정부가 나서야 https://www.pharm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046 ・청각장애인 투명마스크 한계, 청와대 ‘호소’ https://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4&NewsCo de=00142020072114065775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