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말하자면 이 책은 ‘책에서 발췌한 ’책에 관한 문장‘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책의 말들」 김겨울 작가의 들어가는 말 中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안다. 독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행위여서 가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 실은 그 책에서 가장 무쓸모한 문장일 때도 있다는 것을.” - 「책의 말들」 김초엽 작가의 추천하는 말 中

지난 2월 김겨울 작가의 신작 「책의 말들」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책에 관한 100개의 문장과 그 문장에 관한 100편의 글이 실려 있다.’고 말하며 ‘… 이 책은 순전히 책에 관한 책이 아니라, 책을 읽어 온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100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서술했다. 책 속의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세계를 엮는 것. 책에서 떨어져 나온 문장은 책 속의 맥락을 잠시 잃어버리고, 나의 세계와 엮여 또 다른 의미를 구축한다. 이 매력적인 방식을 차용하여 교지 위원들의 세계를 슬쩍 엿보는 쉬어가기 시간을 준비했다. 다만, 교지 위원들은 ‘책에 관한 문장’이라는 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장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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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최세영

식물들은 인간의 출퇴근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들은 염치없이, 맹렬하게 자란다.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

시간의 무서움을 이렇게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벚꽃은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염치없이 맹렬하게 자란 푸른 잎만이 무성하다. 나는 벚나무의 잎사귀들을 보면 슬픈 기분이었더랬다. 벚나무의 이파리 뿐만이 아니다. 나는 6월이면 ‘하지 블루’를 겪는다. 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 이 날부터는 밤의 시간이 낮의 시간을 잠식한다. 그럼 나는 그 날부터 앞으로는 낮이 없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며 기운이 빠져버리고 만다.

아이유의 노래 역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다행히 이쪽은 아이유 씨가 먼저 그 나이를 겪어보고 노래로 남겨준 덕분에 듣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고마운 예시다. 그가 노래 ‘팔레트’를 남겼던 꼭 스물다섯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며 노래를 들어보니,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조금 알 것 같”긴 하더라. 모든 것은 아니고 ‘조금’ 알 것 같은 나이. 어쩜 그렇게 정확히 파악했을까. 덕분에 나는 그의 노랫말처럼 나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이후에 나온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앞으로 겪게 될 감정을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염치없고 맹렬하게 자라는 식물들에 슬퍼하지 않는 법을 배워갈 수 있기를.

편집위원 김지윤

버스가 털털거리는 바람에 눈 속에 고여 있던 물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창비, 2009)

대중교통 안에서 종종 책을 읽는다. 간혹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절로 흐르는 이야기나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 안 우는 척 조용히 눈물 흘리기. 나중에 척척한 볼을 톡톡 두드리듯 닦아낸다. 중요한 점은 ‘안 운 척’이다. 왜 우는 걸 숨기는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좀 부끄럽지 않은가. 둘, 황급히 눈에 힘을 주고 다른 생각을 하며 침(과 함께 눈물) 삼키기. 눈 속에 고여 있던 물기가 좀 마른 거 같으면 열심히 눈을 깜빡여 역시 아무 일도 없는 척 한다. 뒷내용이 궁금해 결국 다시 책을 펼치면 눈물 참기, 책 펼치기, 눈물 참기 이하반복.

그런데 마스크를 끼니 총체적 난국인 상태가 자꾸 발생한다. 난국은 눈물과 함께 찔끔 나는 콧물로부터 발발한다. 조용히 훌쩍이려고 해도 숨과 함께 마스크가 들썩이지,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벗고 코를 닦기는 뭐 하지, 소심한 훌쩍임과 이럴 때나 나오는 맑은 콧물은 나와 밀당을 시전한다.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다가 안경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그럼 책은 잠시 놓아두고 안경을 벗는다. 주변 신경 안 쓰는 척 그 눈물을 옷자락으로 닦아 다시 낀다. 아, 끼기 전에 눈 주변도 후다닥 닦아준다. 이제 ‘안 운 척’은 이미 저 멀리 떠나간 상황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눈앞에서 아는 사람이 우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얼마나 신경 쓰겠어. 그렇게 부끄러움을 다독이면서도 왠지 눈물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나에게 눈물은 너무나 개인적인 일인가 보다.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그런데 왜 부끄러울까. 오늘도 고민한다.

편집위원 송지원 어쩜, 내가 그렇게 예측가능한, 지독하게 평범한 아이였는지 누가 알았겠니. - 제이 아셰르,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 책, 2009)

우리는 언제나 평범하기보단 독특함을 동경한다. 아, 여기서 독특함이란 남이 가지고 있진 않으나 나에게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을 ‘무언가’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남들이 아무도 입지 않는 옷을 내가 입었을 때 어울린다면 그것은 독특함이지만 내게 조화롭지 않다면 그것은 괴상망측함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기준’을 넘은, 그러니까… 다시 나의 말을 인용하자면 조화롭지 않은 것들은 배척한다. 그러니 독특함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독특함을 동경하게 되었을까?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내가 생각하기엔 계급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 같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양반 을, 고려시대로 따지면 문벌귀족을, 신라에서는 성골은 그 시절 ‘독특함’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농업에, 그리고 살아가기에 바빴던 평민들은 그런 귀족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남았겠고 이러한 풍습이 세대를 거쳐 이어짐으로써 독특함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으리라. 그러니 현대사회에 있어 독특함을 동경하는 풍습 역시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계급에서 더욱 높은 계급을 동경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독특한 사람이 된다면, 그 독특함 역시 평범함이 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언제나 나 자신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지만 행복해지는 길은 동경보다 만족에 있음을 기억하는 쪽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 윤예진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 김혜진,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

언제부턴가 ‘힘들다’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 듣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힘들다’는 것에 대해 더는 솔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왜? ‘너만 힘든 거 아니야.’ 꽤 많이 마주했던 말이다. 사실 나도 몇 번 했던 것 같다.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다들 힘들다고.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위로될 줄 알았다. 내가 들었을 때도,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나처럼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때가 있었다. 남들도 다 힘든데,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가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힘들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모두 그렇다고 해서 내 ‘힘듦’이,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해도 내 힘들과 아픔은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아픔에 집중하였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다 꿋꿋이 살아간다고 해서 함께 꿋꿋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다. 음. 나 하나쯤은 조금 천천히 내 아픔을 달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다 같이 천천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 같이 조금 덜 아프고, 덜 힘들 수 있지 않을까? ‘힘들다’라는 말을 조금은 하기 쉬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힘들다는 것에 솔직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투정 즈음은 받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세상이.

수습위원 김동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문학사상, 2019개정)